아로마 향기 속에서 나는 왜 '변태'가 되었나? - 노출과 뇌과학의 상관관계
지난 12월, 베트남 다낭으로 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이라는 큰 산을 넘었던 한 해였기에, 경제적인 부담과 신변 정리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2025년의 끝자락에 떠난 여행이었다.
다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관광지로서의 볼거리가 풍성한 곳은 아니었다. 덕분에 시간은 넉넉했고, 저렴한 현지 물가 덕에 이른바 '황제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스케줄의 화룡점정은 단연 마사지였다. "1일 1마사지는 해야 동남아 여행을 제대로 한 것"이라는 속설을 충실히 따르며 매일 60분에서 90분씩 내 몸을 맡겼다.
평소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과 씨름하는 개발자이다 보니 어깨와 등이 굳어 한국에서도 종종 아로마 마사지를 받곤 했다. 그런데 다낭의 어둑한 마사지 룸, 엎드려 있는 내 머릿속을 스친 건 근육이 풀리는 시원함만이 아니었다. 묘한 도파민이 돌고 있었다.
그 자극의 원천은 다름 아닌 **'타인 앞에서의 탈의 상태'**였다.
나는 잠재적 노출증 환자인가? 낯선 이방인 앞에서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나를 보고 만진다는 상황 자체가 주는 묘한 흥분감. 와이프와의 익숙한 잠자리에서는 느끼기 힘든 종류의 찌릿함이었다. 순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 혹시 변태인가?"
하지만 이 물음은 자책이나 부정의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도 '성적인 정상성(Normalcy)'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개인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사회적 규범이라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한 성생활만이 옳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껍질을 벗기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든 자신만의 고유한 벽(癖), 즉 남들과 다른 '변태성'을 하나씩은 품고 산다. 단지 사회적 가면 뒤에 능숙하게 숨기고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조금씩 이상하다.
그러니 지금 마사지 베드 위에서 내가 느끼는 이 생경한 감각은 '비정상'이 아니라,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내 본능의 취향이 아로마 향과 함께 피어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뇌과학의 관점을 빌려 설명하자면, 이것은 지극히 생물학적인 뇌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뇌는 '안전한 일탈'을 즐긴다
심리학에는 **'무해한 위반(Benign Viol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적으로 옷을 벗는 건 금기(Violation)지만, 마사지 샵이라는 합법적이고 안전한(Benign) 틀 안에서 이 금기를 깰 때 뇌는 쾌락을 느낀다. 이때 우리 뇌의 보상 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은 마치 위험한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활성화된다. 평온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날것의 자극이다.
보여짐으로써 존재한다
여기에 **'낯선 사람 효과(The Stranger Effect)'**가 기름을 붓는다. 마사지 베드 위에서 나는 철저히 수동적인 '관찰의 대상(Object)'이 된다. 누군가 나를 주시하고 만진다는 것은, 원시 시대의 뇌에게 있어 '위협' 아니면 강력한 '구애'의 신호다. 뇌는 이 강렬한 주목(Attention)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신호로 착각하고 도파민을 뿜어낸다. 즉, "내 몸은 여전히 타인에게 반응을 이끌어낼 만큼 매력적이다"라는 본능적 확인 도장인 셈이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호르몬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랑하는 와이프의 앞에서는 이런 도파민이 터지지 않을까? 이것은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뇌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뇌는 흥분을 유발하는 '도파민' 대신, 신뢰와 안정을 주는 **'옥시토신'**을 선택한다. 집은 전쟁터가 아니라 쉼터여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마사지사가 주는 자극이 '롤러코스터의 스릴'이라면, 와이프가 주는 안정감은 '따뜻한 온돌방'이다. 롤러코스터 위에서 온돌방의 편안함을 찾을 수 없듯, 온돌방에서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기대하는 건 뇌과학적으로 모순이다. 이를 생물학에서는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와 연결 짓기도 한다. 수컷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본능은 죄가 없다, 다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다시 옷을 갖춰 입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다낭에서의 그 묘한 흥분은 내 안에 숨겨진 본능의 민낯을 확인한 해프닝으로 남았다.
중요한 건, 내 안에 그런 '석기시대의 본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능이 부부 관계의 소중한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뇌의 사령탑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제 역할을 하게 두는 것이다. 가끔은 와이프와 함께 낯선 여행지로 떠나거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뇌를 살짝 속여보는(Hacking) 귀여운 노력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변태적인 본능을 가지고 산다. 그것을 세련되게 다루는 것이 현대인의 교양일 뿐.